계약서의 숨은 복병 '독소조항' 감별법: 준거법(Governing Law)과 중재(Arbitration) 조항


해외 바이어와 제품 스펙, 수량, 인코텀즈 조건, 가격까지 모두 합의하고 나면 드디어 최종 서명을 위한 영문 매매계약서(Sales Contract)를 주고받게 됩니다. 이때 많은 초보 무역 회사나 스타트업 실무자들이 저지르는 가장 치명적인 실수가 있습니다. 앞부분의 금액과 수량만 대충 확인하고, 계약서 뒷부분에 빽빽하게 적힌 자잘한 영문 조항들은 "으레 들어가는 표준 문구겠지"라며 그냥 넘겨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계약서의 진짜 무서운 칼날은 언제나 맨 뒷장, 가장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법입니다.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가도 막상 불량품이 발생하거나 대금 지급이 밀려 법적 분쟁이 터지는 순간, 이 뒷장의 조항 하나 때문에 회사가 감당할 수 없는 손해를 입고 독박을 쓰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를 무역 현장에서는 '독소조항'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실제 계약 검토를 해보니 영문 계약서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강력하게 우리 회사의 목줄을 죄어오는 복병은 다름 아닌 '준거법(Governing Law)'과 '중재(Arbitration)' 조항이었습니다. 오늘은 도장을 찍기 전, 반드시 확인하고 수정해야 할 이 두 가지 핵심 조항의 감별법과 협상 실무 팁을 전해드리겠습니다.

1. 준거법(Governing Law) 조항: 분쟁 시 '어느 나라 법'을 따를 것인가

준거법 조항은 "이 계약의 해석과 이행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어느 국가의 법률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를 정하는 약속입니다. 영문 계약서에는 보통 "This Agreement shall be governed by and construed in accordance with the laws of [국가명]" 형태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빈칸에 상대방 국가의 법(예: 미국의 특정 주법이나 중국법)이 그대로 적혀 있다면 초보 기업에는 엄청난 불리함으로 작용합니다. 만약 바이어가 대금을 주지 않아 소송을 걸고 싶어도, 우리는 상대방 국가의 상법과 계약법이 우리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현지 로펌을 선임해야 하는데, 그 비용만으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 대금 회수를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준거법을 '대한민국 법(Laws of Republic of Korea)'으로 관철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이어 역시 자기네 법을 고집하며 팽팽하게 맞설 확률이 높습니다. 이럴 때 유용한 실무적 타협안이 있습니다. 바로 싱가포르, 영국, 또는 홍콩처럼 국제 무역법 체계가 극도로 중립적이고 투명하게 발달한 '제3국의 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하자고 역제안하는 것입니다. 특히 아시아권 거래에서는 싱가포르법이 양측 모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훌륭한 대안이 됩니다.

2. 중재(Arbitration) 조항: 법원이 아닌 제3의 기관에서 끝내라

많은 사람들이 계약서에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법원에 가서 재판(Litigation)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국가 간의 무역 분쟁에서 재판은 시간과 비용 면에서 자살행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국제 무역 계약서에는 법원 재판 대신 '중재(Arbitration)'를 통해 분쟁을 해결한다는 조항을 넣습니다.

중재란 법원의 판사 대신, 무역 전문가들로 구성된 중재인단을 구성해 판결을 내리는 제도입니다. 중재의 가장 큰 장점은 '단심제'라는 점입니다. 대법원까지 가며 몇 년을 끌 수 있는 소송과 달리, 중재는 한 번 판결이 나면 그것으로 끝(최종력)이며, '뉴욕협약'에 가입된 전 세계 160여 개국에서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강제집행력을 가집니다.

하지만 이 중재 조항에도 무서운 독소조항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중재지(Place of Arbitration)'와 '중재기관'의 위치입니다. 예를 들어 "중재는 미국 뉴욕에서, 미국중재협회(AAA)의 규칙에 따른다"라고 되어 있다면, 우리는 분쟁이 생길 때마다 직원들과 변호사를 대동하고 뉴욕으로 날아가서 영어로 싸워야 합니다. 비행기 값과 현지 체류비, 시간 비용만으로 이미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 됩니다.

따라서 실무자는 중재 조항을 검토할 때 반드시 중재지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꾸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대한상사중재원(KCAB)'을 중재기관으로 하고, 중재지를 '서울(Seoul, Korea)'로 지정하는 것입니다. 만약 바이어가 반발한다면, 앞서 준거법과 마찬가지로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SIAC)' 같은 중립적인 제3의 지역을 타협점으로 삼아야 리스크를 대등하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3. 계약서 날인 직전, 실무자가 확인해야 할 독소조항 체크리스트

바이어가 보내온 계약서 양식(Format)을 바탕으로 최종 검토를 할 때, 피해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3단계 실무 루틴입니다.

첫째, '관할법원' 조항과 '중재' 조항이 동시에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간혹 어설프게 작성된 계약서 중에는 분쟁 시 "한국 법원에서 소송한다"는 문구와 "싱가포르에서 중재한다"는 문구가 동시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결함 있는 조항(Defective Clause)'이라고 부르며, 실제 분쟁 발생 시 어느 쪽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계약서 자체가 무효 소송에 휘말리는 원인이 됩니다. 분쟁 해결 방식은 소송과 중재 중 반드시 '단 하나'만 명확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둘째, '손해배상 책임의 제한(Limitation of Liability)' 조항을 반드시 삽입하십시오. 이 조항이 없으면, 우리 제품의 작은 결함 때문에 바이어가 영업을 망쳤다며 제품 가격의 수십 배에 달하는 '간접 손해(Consequential Damages)'나 '기회비용 상실'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때 방어하기 어렵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당사의 총 손해배상 책임은 바이어가 당해 계약을 통해 실제 지급한 총 물품 대금을 초과할 수 없다"는 방어막 문구를 반드시 추가해야 회사의 파산을 막을 수 있습니다.


  • 국제 무역 계약서의 가장 무서운 독소조항은 주로 계약서 말미에 위치한 준거법(어느 나라 법을 따를 것인가)과 분쟁 해결 조항에서 발생합니다.

  • 준거법과 중재지(분쟁을 해결할 장소)를 무조건 상대방 국가로 지정하는 것은 법적 분쟁 발생 시 막대한 비용과 시차 부담을 떠안게 되므로 극도로 위험합니다.

  • 우리 측 지역으로 관철하기 어렵다면 싱가포르법이나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SIAC)처럼 중립적인 제3국의 법률과 기관을 타협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실무적인 정석입니다.


※ 본 글은 일반적인 무역실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한 정보성 콘텐츠입니다. 실제 적용 기준은 국가별 법령, 관세청 고시, 선사 정책 및 계약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최신 기준을 함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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